김치 저온 숙성 vs 상온 숙성, 유산균 함량 정말 다를까

저는 김치냉장고 광고 문구를 볼 때마다 살짝 갸우뚱했습니다.
'유산균이 몇 배 더 늘어난다'는 식의 문구가 나올 때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근거로 하는 말인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직접 논문을 찾아 뒤져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상온 숙성이 유산균을 '더 많이' 만드는 건 아닙니다.
다만 유산균에 '더 빨리' 도달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상온이 유산균을 더 많이 만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021년 국제학술지 Foods에 실린 MALDI-TOF MS 분석 연구는 배추김치를 4℃, 10℃, 23℃ 세 가지 온도에서 각각 발효시키며 생균수를 추적했습니다.

결과가 흥미로웠는데요.
23℃(상온)에서는 발효 3일 만에 최대 생균수(평균 7.85 log CFU/mL)에 도달했습니다. 반면 4℃와 10℃(냉장)에서는 15일이 걸려서야 비슷한 수준(각각 7.86, 7.94 log CFU/mL)에 도달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거의 같습니다.
차이는 '도착 시점'이지 '도착 지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상온은 급행열차, 저온은 완행열차 — 그런데 내려서 보니 같은 역이었던 셈이죠.

그럼 뭐가 다를까 —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떤 균이'

숫자는 비슷한데, 그럼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같은 연구는 온도에 따라 우세해지는 유산균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상온에서는 신맛과 물러짐(연부)을 유발하는 Lactobacillus brevis, Lactiplantibacillus plantarum 계열이 더 빠르게 증식했습니다. 반면 4℃ 저온에서는 감칠맛과 유익 물질을 만드는 Latilactobacillus sakei, Leuconostoc mesenteroides 계열이 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계김치연구소가 2024년 Heliyon에 발표한 온도별 미생물·대사산물 분석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10~15℃ 구간은 4℃보다 유산균의 다양성과 풍부도가 뚜렷이 높았고, Lactiplantibacillus plantarumLatilactobacillus sakei가 유의하게 늘어난 반면 Lactococcus lactis는 줄어들었습니다.

발효 온도별 유산균 비교 23℃ · 상온 생균수 도달 시점 발효 3일 만에 최대치 우세 유산균 특징 신맛·물러짐 유발균 맛있는 기간(적숙기) 1~9일 · 짧음 10℃ · 냉장 초입 생균수 도달 시점 발효 15일 만에 최대치 우세 유산균 특징 상온·저온 중간 성향 맛있는 기간(적숙기) 5~40일 · 중간 4℃ · 저온 생균수 도달 시점 발효 15일 만에 최대치 우세 유산균 특징 감칠맛·시원한 맛균 맛있는 기간(적숙기) 20~60일↑ · 긺
발효 온도(4도/10도/23도)별 유산균 도달 속도와 우세균 특징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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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온 균이 만드는 '시원한 맛'의 정체는 뭘까

김장철 김치가 유독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고 느끼신 적 있으실 텐데요.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김치연구소 장지윤 박사팀이 국제학술지 Food Control(2018)에 발표한 연구는 전국 배추김치 66종을 계절별로 분석했습니다. 겨울철(저온기)에 담근 김치는 봄 대비 137%, 가을 대비 176% 더 많은 비중의 류코노스톡균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류코노스톡은 시원한 단맛(만니톨)과 탄산감(이산화탄소)을 만드는 균입니다.

다만 이 연구는 온도를 직접 통제한 실험이 아니라 계절별 시판 김치를 비교한 상관관계 분석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저온'과 '류코노스톡 증가'가 함께 나타났을 뿐, 이 논문 하나로 온도가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이릅니다. 다만 앞서 본 저온성 유산균 연구 결과와 방향은 일치합니다.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지(2023)에 실린 저온성 유산균 분리 연구는 이 부분을 조금 더 명확히 뒷받침합니다. Leuconostoc gelidum, Leuconostoc inhae 같은 균종은 10~20℃에서는 잘 분리되지만, 30℃ 고온에서는 생장 곡선 자체가 저조했습니다. 애초에 차가운 환경에 맞춰 진화한 균이라, 저온 숙성 김치에서 상대적으로 잘 살아남는 것입니다.

김치, 얼마나 두고 먹어야 제일 맛있을까

유산균 '숫자'보다 더 체감되는 차이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입니다.

앞서 본 Foods(2021) 연구는 산도 0.6%(가장 맛있다고 느껴지는 적정 산도)에 도달하는 시점과, 산도 1.5~2.0% 이상(과숙성으로 넘어가는 시점)도 함께 측정했습니다.

23℃ 상온은 1일 만에 적정 산도에 도달했지만, 9일이면 벌써 과숙성으로 넘어갔습니다. 10℃는 5일 만에 적정 산도, 40일이면 과숙성이었고요. 4℃ 저온은 20일이 지나야 적정 산도에 도달했지만, 60일이 지나도 과숙성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저온은 '맛있는 순간'까지 오래 걸리지만,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훨씬 오래 머무릅니다. 상온은 빨리 맛있어지는 대신, 그 시간도 짧게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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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에 하루 두고 냉장하라는 말, 근거가 있었을까

'김치를 담근 뒤 하루 정도 상온에 뒀다가 냉장고에 넣으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솔직히 이게 그냥 옛날부터 내려오는 습관인 줄로만 알았는데요.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유통 김치의 발효 기간과 병원성 세균 상관관계 조사를 보면, 이 말에는 실제로 근거가 있었습니다.

연구원은 살모넬라·쉬겔라·리스테리아·대장균을 인위적으로 접종한 김치를 25℃와 4℃에 각각 보관하며 관찰했습니다. 25℃ 상온에서는 유산균이 하루 만에 최대치에 도달했고, 급격한 pH 하강이 식중독균의 사멸을 앞당겼습니다. 살모넬라는 1~2일, 대장균·쉬겔라·리스테리아는 3~6일 만에 사멸했습니다.

반면 4℃ 냉장에서는 유산균 발효가 완만하게 진행되면서, 이 과정에서 생성된 유산이 식중독균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살모넬라는 10~16일, 쉬겔라·대장균은 각각 23일·27일이 지나야 사멸했고, 리스테리아는 30일 동안 생존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상온에서 하룻밤 숙성 후 냉장 보관"이라는 익숙한 습관이, 맛과 안전성 두 측면 모두에서 나름의 근거가 있었던 셈입니다.

식중독균 사멸까지 걸린 시간 25℃ · 상온 보관 살모넬라 1~2일 만에 사멸 대장균 3~6일 만에 사멸 쉬겔라 3~6일 만에 사멸 리스테리아 3~6일 만에 사멸 4℃ · 냉장 보관 살모넬라 10~16일 만에 사멸 대장균 27일 만에 사멸 쉬겔라 23일 만에 사멸 리스테리아 30일간 생존 유지
상온 25도 vs 냉장 4도, 식중독균 사멸까지 걸린 기간 비교

김장김치는 원래 이렇게 만들어졌던 방식이었습니다

사실 저온 장기숙성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김치의 원래 만들어지던 방식에 가깝습니다.

Journal of Microbiology(Springer, 2008)에 실린 연구는 전통적으로 땅속 항아리에서 저장하던 김장김치의 온도를 추적했습니다. 발효 온도는 5~9℃, 저장 온도는 영하 2℃ 수준이었고, 이런 조건에서는 Lactobacillus sakei가 우점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발효 시작 후 20일 동안은 하루 약 0.3℃씩 서서히 온도가 낮아지다가, 이후 1.6℃ 부근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패턴이었습니다.

지금의 김치냉장고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겁니다. 땅속 항아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던 '서서히 낮아지다 안정되는 저온'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렇습니다.
'상온이 유산균을 더 많이 만든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더 빨리 만들 뿐, 도달하는 양 자체는 저온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온은 감칠맛을 내는 유산균이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머무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김치를 오래 두고 맛있게 드시고 싶은 분이라면, 담근 직후 하루 정도만 상온에 뒀다가 이후로는 저온으로 넘기는 방식을 권해드립니다.
느리게 가는 쪽이 결국 더 오래 맛있는 길이었으니까요.


참고 자료

  1. Analysis of Cultivable Microbial Community during Kimchi Fermentation Using MALDI-TOF MS — 학술 논문(Foods, MDPI), 2021.5
  2. Temperature impact on microbial and metabolic profiles in kimchi fermentation — 학술 논문(Heliyon, 세계김치연구소), 2024.2
  3. Influence of Isolation Temperature on Isolating Diverse Lactic Acid Bacteria from Kimchi — 학술 논문(J. Microbiol. Biotechnol.), 2023
  4.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김치, 실온에서 하룻밤 숙성 하면 더 안전" — 정부출연연구기관 발표 보도(경향신문), 2021.4.13
  5. 겨울철에 담근 김치 '시원한 단맛' 나는 이유 찾았다 — 세계김치연구소 연구 발표 보도(식품저널), 2018.10.17

⚠️ 이 글은 위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정보 제공 목적의 글이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정확한 판단은 의사·약사 등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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