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유산균 변화, 발효 단계별로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김치를 담글 때마다 '언제 먹어야 제일 맛있을까'만 궁금해했습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사실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김치 유산균 자료를 하나둘 찾아보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김치는 하나의 균이 처음부터 끝까지 발효시키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유산균이 순서대로 무대에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일종의 계주 경기에 가까웠습니다.

담근 직후의 새콤함과 다 익은 뒤의 강한 산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이 '균의 교대'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교대가 정확히 언제, 어떤 순서로 일어나는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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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Huiyeon Kim | 출처: Unsplash

미숙기 — 담근 직후, 류코노스톡이 먼저 움직입니다

갓 담근 김치는 산도가 0.3% 이하로, 발효로 인한 맛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이 시기에는 배추 표면에 원래 있던 잡균들이 뒤섞여 있다가, 곧 류코노스톡(Leuconostoc)속이 빠르게 우세해지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Leuconostoc mesenteroides와 Leuconostoc citreum입니다. 이 균들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가 김치 속을 산소 없는 환경으로 바꾸는데요, 이 덕분에 호기성 부패균은 자리를 잃고 유산균만 살아남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소금 농도가 2~3%일 때 이 '잡균 억제' 효과가 가장 뚜렷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균의 취향도 갈린다는 점입니다. L. mesenteroides 아종 mesenteroides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일반 김치에서, 아종 suionicum은 백김치에서 각각 10배 이상 높게 검출됐습니다. 같은 균속이라도 고춧가루 유무에 따라 선호하는 '집'이 다른 셈입니다.

발효 단계별 우점 유산균 천이 과정을 보여주는 도식

적숙기 — 김치 유산균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순간

발효가 중기(산도 0.3~0.8%)로 넘어가면 유산균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잡균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관능적으로 '김치가 가장 맛있다'고 느껴지는 구간이 바로 이때입니다.

이 시기 초반에는 Leuconostoc mesenteroides가 계속 자리를 지키지만, 발효가 더 진행되면 Weissella koreensis가 중기 우점종으로 부상합니다. 대략 30일 전후, pH가 4.6 수준까지 낮아진 시점입니다.

잘 익은 김치의 줄기 부분에는 1g당 1억 마리 이상의 김치 유산균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고농축 요거트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밀도인데요, 숫자로만 보면 잘 와닿지 않지만 '한 숟갈에 억 단위의 균이 들어있다'고 하면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단계의 류코노스톡속 균은 만니톨(mannitol)이라는 시원한 단맛 성분과 이산화탄소를 함께 만들어냅니다. 김치 특유의 '톡 쏘는 청량감'이 여기서 나옵니다. 저온에서 천천히 익힌 김치일수록 만니톨과 아미노산이 더 많이 쌓여 그 시원한 맛이 진해진다고 하니, 급하게 익히지 않는 게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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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숙기 — 시원한 맛이 강한 산미로 바뀌는 이유

산도가 1.0%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신맛이 눈에 띄게 강해지고, 다른 미생물들의 활동은 대부분 멈춥니다.

산에 약한 류코노스톡·와이셀라는 이 시점부터 힘을 잃습니다. 대신 내산성이 강한 Lactobacillus plantarum이 서서히 우점종 자리를 차지하는데요, pH가 4 부근까지 내려가도 이 균은 오히려 왕성하게 증식합니다. 류코노스톡 특유의 시원한 맛이 옅어지고 깔끔한 산미로 바뀌는 게 바로 이 교대 때문입니다.

실제 pH 변화를 보면 흐름이 더 선명합니다. 갓 담근 김치의 pH는 5.5~6.0 정도이지만, 약 1주일 후에는 4.2 아래로 떨어집니다. 잘 숙성된 김치의 일반적인 pH는 4.0~4.2이며, 여기서 더 낮아지면 내산성균만 살아남는 환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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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Portuguese Gravity | 출처: Unsplash

락토바실러스, 종류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락토바실러스'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김치 유산균 안에서도 종류별로 역할이 꽤 다릅니다.

Lactobacillus brevis는 흔히 발효 후기의 신맛 담당으로 소개되지만, 저온에서는 초기부터 Weissella koreensis와 함께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르기닌을 빠르게 분해하고,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을 만들어내는 균주도 보고되어 있습니다.

Lactobacillus sakei는 동형발효를 하는 저온성 균으로, 냉장고 속에서도 꾸준히 활동합니다. 겨울 내내 냉장고에서 김치 맛이 계속 변하는 것도 이런 저온성 균들 덕분입니다.

Lactobacillus fermentum과 Lactobacillus paracasei subsp. paracasei는 결이 좀 다릅니다. 농촌진흥청이 2020년 발표한 김치 유산균 생태지도 연구에서 확인된 기능성 균주로, 각각 면역력 증진과 항염·항산화 효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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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연구가 밝힌 것 — 류코노스톡이 이기는 진짜 이유

작년에 나온 npj Science of Food 연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왜 특정 류코노스톡 균주는 다른 균을 제치고 끝까지 우점종으로 남을까.'

연구진은 스타터 균주와 자연 발생 균총의 경쟁을 다중오믹스로 들여다봤습니다. 결과는 발효 0~6일에는 자연 발생 Leuconostoc citreum이 앞서다가, 11일 이후부터는 접종한 스타터 균주가 서서히 역전하는 흐름이었습니다. 22일이 지나면 스타터 균주가 최종 우점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핵심 요인으로는 ATP 의존적 분자 샤페론과 탄수화물 대사 유전자가 꼽혔습니다. 우수 균주는 라피노스, 락토스, 말토스 같은 다양한 탄소원을 활용할 수 있었고, 이 능력이 냉해와 산성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 '더 다양한 먹이를 소화하는 균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이야기, 어딘가 익숙한 생존 법칙처럼 들립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Weissella koreensis가 언제 우점하는지는 연구마다 다르게 보고됩니다. 저온 장기 숙성 김치에서는 초기부터 강하게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는 반면, 다른 실험에서는 중기~후기에 우점했습니다. 발효 온도와 조건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 한쪽만 정답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김치 유산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종류가 아니라, 미숙기의 류코노스톡에서 적숙기의 와이셀라를 거쳐 과숙기의 락토바실러스까지 순서대로 바통을 넘기는 계주였습니다. 다음에 김치를 드실 때는 '지금 이 맛을 만드는 균이 누구일지' 한번 상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같은 김치통 안에서도 날짜에 따라 전혀 다른 균이 일하고 있다는 걸 알면, 젓가락질 한 번이 조금 더 재미있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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