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썰 때 눈물 안 나는 법, 진짜 과학적 원리는?
양파를 썰면 왜 눈물이 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범인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세포를 부수는 효소와, 그 결과물을 다시 눈물 유발 물질로 바꾸는 또 다른 효소가 함께 작동해야만 눈이 매워집니다. 이 두 번째 효소의 존재는 2002년에야 학계에 처음 보고됐습니다.
저는 사실 요리할 때 양파 써는 순서를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는 편입니다. 다른 재료 다 손질해두고,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눈을 찡그리며 써는 식이었는데요.
그런데 최근에 이 눈물의 원인을 제대로 찾아보다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냥 매운 성분이 나와서 그렇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두 가지 효소가 정확한 순서로 작동해야만 눈물이 나는 꽤 정교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응 경로를 알고 나니, 어떤 방지법이 진짜 효과가 있고 어떤 게 그냥 속설인지도 명확해지더군요.
양파를 썰면 왜 눈물이 날까 — 오래된 통설부터 정정하고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양파 안에 있는 알리네이스(alliinase)라는 효소 하나가 최루 성분을 만든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은 틀렸습니다.
일본 하우스식품과 도쿄대·교토대 공동 연구팀이 2002년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최루 기체가 만들어지려면 효소 두 개가 순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알리네이스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1단계: 양파 세포 속에 저장된 이소알린(isoalliin)이라는 황화합물을, 칼에 세포가 잘리면서 나온 알리네이스가 분해해 설펜산을 만듭니다.
2단계: 이 설펜산을,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최루인자합성효소(lachrymatory factor synthase, LFS)가 다시 반응시켜야 비로소 최루 기체인 'syn-프로페인싸이알-S-옥사이드(PTSO)'가 완성됩니다.
이 두 번째 효소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최루 기체 대신 양파 특유의 감칠맛을 내는 성분만 만들어집니다. 즉 눈물을 유발하는 반응과, 양파의 풍미를 만드는 반응은 갈림길에서 나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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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O는 상온에서도 기체 상태로 존재하고, 물에 잘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파를 썰면 이 기체가 공기 중으로 퍼지다가, 눈을 덮고 있는 눈물막(수분층)에 닿아 그대로 녹아듭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문제입니다. 위스콘신-매디슨대 원예학과 어윈 골드먼(Irwin Goldman) 교수는 이 과정을 UW-Madison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본적으로 눈 속에서 황산과 비슷한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요.
이 옅은 산성 물질이 각막의 감각신경을 자극합니다. 신경이 뇌로 "위험 신호"를 보내면, 그 반사 작용으로 눈물샘이 눈물을 쏟아내 자극 물질을 씻어내려 하는 겁니다. 매운 걸 먹었을 때 콧물이 나는 것과 비슷한, 몸의 방어 반응인 셈입니다.
알리엄(마늘·양파속 식물) 화학의 권위자로 꼽히는 올버니 뉴욕주립대 에릭 블록(Eric Block) 교수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체 반응을 "과학적으로 보면 상당히 아름다운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눈이 따가운 사람 입장에선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긴 합니다만.
이건 사실 양파 입장에서는 우연이 아닙니다. 곤충이나 초식동물이 씹어 먹으려 할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진화시킨 화학적 방어 수단이라는 게 학계의 설명입니다. 식물이 우리를 울리려고 작정한 건 아니고, 원래 겨냥한 대상은 곤충이었던 거죠.
그래서 뭘 하면 실제로 덜 매울까 — 원리로 보는 방지법
반응 경로를 알면, 어느 지점을 끊어야 효과가 있는지도 보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방법들은 전부 "효소 반응 속도를 늦추거나", "기체가 눈에 닿기 전에 없애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차갑게 보관한 양파 쓰기
효소 반응은 온도가 낮을수록 느려진다는 건 생화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골드먼 교수도 "이건 효소가 매개하는 반응이고, 낮은 온도는 효소 속도를 늦춘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썰기 전에 잠깐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만으로 반응 자체가 느려집니다.
흐르는 물 아래에서 썰거나, 썬 양파를 물에 담그기
PTSO는 물에 잘 녹는 기체입니다. 공기 중으로 퍼지기 전에 물에 녹아버리면, 눈까지 도달하는 기체량 자체가 줄어드는 원리입니다.
환기가 잘 되는 곳, 선풍기 근처에서 썰기
에릭 블록 교수는 눈물을 피하는 가장 좋은 전략으로 "환기가 잘 되는 곳, 선풍기 근처에서 양파를 써는 것"을 직접 꼽았습니다. 기체가 눈에 도달하기 전에 공기 중으로 흩어지게 만드는 방법이니까요.
잘 드는 칼로 썰기
날이 무딘 칼은 세포를 짓이기듯 뭉개면서 효소와 기질이 더 많이 섞이게 만듭니다. 반대로 잘 드는 칼은 세포벽을 깔끔하게 절단해 상대적으로 파괴되는 세포 수 자체를 줄여줍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정량적으로 측정한 학술 논문까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여러 조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실무적 원리라는 점은 밝혀둡니다.
가열하면 아예 반응이 멈춘다
알리네이스 효소는 열에 약합니다. 볶거나 끓이는 조리 과정에서는 효소가 비활성화돼 반응 경로 자체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양파볶음을 만들 때는 애초에 눈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이유입니다.
촛불 옆에서 썰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촛불이나 가스레인지 불꽃 옆에서 양파를 썰면 눈이 안 맵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불꽃에서 나오는 탄소 알갱이가 매운 성분을 흡수해 없애준다는 설명이 함께 따라붙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설명을 뒷받침하는 화학적 근거나 학술 자료는 이번에 찾아보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긴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속설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불꽃 옆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느껴진다면, 탄소 입자의 흡착 효과보다는 그냥 공기가 데워지며 흐름이 생기는 정도의 부수 효과일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냉장 보관 시 90% 이상 감소" 같은 구체적인 수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처로 언급된 연구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이 글에서는 검증 가능한 원리 위주로만 정리했습니다. 숫자가 그럴듯하다고 다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결론 — 양파는 잘못이 없습니다
정리하면, 양파를 썰 때 눈물이 나는 건 알리네이스와 최루인자합성효소(LFS)라는 두 효소가 순서대로 작동해 최루 기체를 만들고, 이 기체가 눈물막에 녹아 산성 물질을 만들면서 각막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정확히 밝혀진 건 생각보다 최근인 2002년입니다.
방지법도 결국 이 반응 경로 어딘가를 끊는 것뿐입니다. 차갑게 보관하고, 흐르는 물이나 환기를 활용하고, 칼을 날카롭게 관리하는 것. 이 정도만 기억하셔도 충분합니다.
다음에 양파를 썰다가 눈물이 핑 돈다면, 짜증 내지 마시고 한 번쯤 이 반응을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양파 입장에서는 그저 자기 자신을 지키려던 것뿐이었으니까요.
참고 자료
- An onion enzyme that makes the eyes water — 학술 논문(Nature), 2002년 10월
- Curiosities: Why do onions make us cry when we cut them? — 대학 공식 뉴스(UW-Madison), 2009년 7월
- The Science Of Why Onions Make Us Cry — 공영언론(NPR), 2016년 6월
- Why Do Onions Make You Cry? | Britannica — 브리태니커×미국화학회(ACS) 공식 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