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반찬으로 차려진 한식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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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먹어온 된장국, 김치, 나물무침 —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한 번도 "왜 이렇게 만들어 먹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파보니, 조상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방식들이 놀랍도록 정확한 과학과 맞아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5가지를 소개해드릴게요.

■ 1. 발효가 없던 영양소를 새로 만든다

된장은 그냥 "삭힌 콩"이 아닙니다. 콩 자체에는 없던 성분이 발효 과정에서 새로 생겨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비타민B12입니다. 식물성 식품에는 원래 비타민B12가 거의 들어있지 않은데, 콩이 미생물에 의해 된장으로 발효되는 과정에서 이 비타민이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된장을 즐겨 먹는 장수 인구를 조사한 연구에서 혈중 비타민B12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2003년 국제학술지 Mutation Research에 발표된 연구는 된장 추출물의 제니스테인·리놀레산 성분이 강한 항돌연변이 활성을 보인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이어 2006년 Nutrition지에 발표된 후속 연구에서는 발효·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된장의 항암·항전이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발효는 단순한 저장법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원재료보다 더 나은 무언가로 계속 바뀌어가는 '생물학적 업그레이드' 과정인 셈입니다.

■ 2. 감칠맛은 혼자보다 둘이 만날 때 폭발한다

한식 국물 요리에 다시마와 멸치, 표고버섯을 함께 넣는 건 그냥 전통이 아니라 정확한 화학입니다. 감칠맛 성분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다시마의 글루탐산, 멸치·소고기의 이노신산, 말린 표고버섯의 구아닐산입니다.

1908년 도쿄제국대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가 글루탐산을 감칠맛 성분으로 처음 규명했고, 1960년 구니나카 아키라가 이노신산의 감칠맛 작용을 밝혀냈습니다. 이후 1967년 야마구치 시즈코가 학술지 Journal of Food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결정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글루탐산 단독으로는 농도가 늘어난 만큼만 감칠맛이 직선적으로 증가하는데,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을 함께 쓰면 감칠맛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험값을 기준으로 두 성분을 같은 비율로 섞으면 최대 7배, 여기에 표고버섯의 구아닐산까지 더하면 최대 30배까지 감칠맛이 뛴다는 후속 연구 결과들도 나왔습니다.

감칠맛 성분 조합에 따른 상승 효과 감칠맛 조합별 상승 배수(단독 대비) 글루탐산 단독 1배 + 이노신산(멸치) 7배 + 구아닐산(표고버섯) 30배 ※ 한식 국물은 이 세 성분을 함께 씀 — 다시마+멸치+표고버섯 육수가 대표적

■ 3. 새우젓과 돼지고기, 효소가 만든 찰떡궁합

보쌈이나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먹는 조합, 그냥 맛의 궁합이 아닙니다. 1998년 한국식품과학회지에 발표된 새우젓(Acetes japonicus) 연구는 새우젓 속에서 알칼리성 프로테아제를 직접 분리·정제해 그 특성을 규명했습니다. 여기에 지방을 분해하는 리파아제 성분도 함께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돼지고기는 상대적으로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은 편이라, 이 효소들이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즉 "느끼한 고기엔 젓갈"이라는 조합은 단순히 짠맛으로 느끼함을 잡는 게 아니라, 실제로 소화를 돕는 효소 작용이 함께 일어나는 과학적인 궁합입니다.

■ 4. 오방색 밥상, 색이 다르면 성분도 다르다

비빔밥이나 잡채를 만들 때 빨강·노랑·초록·검정·하양, 이른바 오방색을 맞춰 재료를 준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걸 그저 보기 좋으라고 하는 장식으로 여기기 쉬운데, 실제로는 색소마다 몸에 이로운 성분이 다르다는 점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오방색 식재료와 대표 파이토케미컬 적(赤) — 고추, 당근, 토마토 라이코펜, 캡산틴 등 붉은 카로티노이드 황(黃) — 단호박, 달걀지단, 콩나물 베타카로틴, 루테인 등 노란 카로티노이드 청(靑) — 시금치, 오이, 애호박 클로로필, 루테인 등 녹색 색소 흑(黑) — 목이버섯, 검은깨, 다시마 안토시아닌, 미네랄이 풍부한 어두운 색소 백(白) — 도라지, 무, 마늘 황 화합물, 사포닌 계열 성분

색이 다르면 그 색을 만드는 화학 성분(파이토케미컬)의 종류도 다릅니다. 비빔밥 한 그릇에 다섯 색을 고루 담는 건,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항산화 성분을 한 끼에 골고루 섭취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영양 설계였던 셈입니다.

■ 5. 옹기는 숨을 쉰다

장독대에 놓인 옹기가 "숨 쉬는 그릇"이라 불리는 데는 최근에야 정확히 규명된 과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2023년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팀이 학술지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에 발표한 연구는 옹기와 밀폐된 유리병에서 각각 배추를 절여 발효시키며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직접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옹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유리병의 절반 이하로 유지됐습니다.

옹기의 미세한 기공이 발효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바깥으로 서서히 "내쉬듯" 빠져나가게 하고, 그 결과 유산균이 좋아하는 낮은 이산화탄소 환경이 유지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기공이 세균의 증식 '속도'는 제한하지 않으면서, 최종 개체수만 적절히 조절하는 일종의 안전밸브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외부 오염원의 유입은 막으면서도 발효에 필요한 가스 교환은 허용하는, 정교하게 균형 잡힌 구조라는 뜻입니다.

이 기공은 옹기를 800도 이상 고온에서 구울 때 흙 속의 결정수가 빠져나가며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지역별로 옹기 모양도 조금씩 다른데, 일조량이 적은 중부지방은 입구를 넓게 만들어 햇빛을 더 많이 받게 하고, 일조량이 많은 영호남지방은 입구를 좁혀 수분 증발을 줄이는 식으로 설계됐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재료과학과 지역 기후까지 고려해 그릇 하나를 최적화했다는 뜻이고, 그 직관이 21세기 유체역학 연구로 뒤늦게 증명된 셈입니다.

다섯 가지를 훑어보니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한식의 전통 방식들은 "그냥 그렇게 해왔던" 관습이 아니라, 오랜 시행착오 끝에 화학과 미생물학, 재료과학의 원리에 우연히든 필연이든 정확히 들어맞은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된장국을 뜰 때, 새우젓에 수육을 찍을 때 한 번쯤 이 과학을 떠올려보시면 밥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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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학술 논문

일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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